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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두 발로 섰어요”
일시 : 2006.09.28 장소 : 서울아산병원
대상 : 뇌성마비 윤영우군

뇌성마비로 고생하던 윤영우군의 재활치료 현장



뇌성마비 윤영우군 특별한 추석맞이
몸무게 1.3㎏ 미숙아로 태어나 까치발을 하고도 못 섰는데…
근육 푸는 수술받고 재활치료 “이제 제 힘으로 걸을 겁니다”

“꼭 제 힘으로 걸을 거예요. 아니면 집(목포)에 가야지 왜 여기 있겠어요.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인데….”

영우(14)가 수줍은 듯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워커를 움켜 잡고서 보조기를 찬 다리를 한 발 한 발 힘겹게 옮긴다. 여드름 가득한 이마에 이내 땀방울이 맺혔다. 영우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다.

임신 7개월 만에 몸무게 1.3㎏으로 태어난 영우는 폐가 작아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의료진도 “장담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고비를 넘겨 살아났지만 조산(早産)으로 인한 충격으로 뇌성마비가 왔다.

양다리가 꼬인 채 뻣뻣하게 굳어 까치발을 하고도 서지 못했다. 재활치료, 사시 교정 수술, 척추 수술, 원인 모를 고열로 의식을 잃기까지…. 용케 고비를 넘겼지만 그때마다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작은 식당 주방장이던 아버지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살아 준 것만 해도 고맙죠. 살아도 듣고 보지도 못할 거라 했는데, 다행히 잘 보고 듣잖아요. 말도 곧잘 하고요.” 어머니 정호순(43)씨는 “혼자서라도 아이를 기르겠다는 각오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도 나섰다. 그 사이 영우네 집은 경기도 성남의 전셋집에서 월세방으로 바뀌었고, 결국 아버지 고향인 목포로 낙향하게 됐다. 더 이상은 병원비를 감당하며 서울 생활을 버틸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예전에 들어뒀던 보험을 담보로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아 목포에서 작은 가게를 차렸다. 하루 두세 시간 눈을 붙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러다 만성신부전증을 얻어 1주일에 3번 이상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3년 뒤엔 아버지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졸지에 집안에 환자가 셋이 됐다.

올해 봄. 재활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 안에만 누워 있는 영우를 보며 걱정만 하던 부부에게 엽서 한 통이 날아왔다. 영우가 태어난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성마비 환자를 둔 부모를 위한 강좌를 연다는 전갈이었다. 여러 번 주소가 바뀌었는데도 용케 도착한 엽서를 받고서 부부는 영우를 업고 무작정 상경했다. 마침 강연장에서 아는 의사를 만났다.

“어렸을 때 제게 치료 받았던 영우가 어느새 다 커서 나타났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안타까웠죠. 영우는 성격도 밝고 의지도 강해서 지금이라도 재활치료를 받으면 많이 좋아질 겁니다.” 부부의 딱한 사정을 들은 재활의학과 성인영 과장은 수술과 재활치료를 약속했다.

지난 6월 30일 영우는 굳어버린 근육을 풀어주는 수술을 받았다. 앞으로 6개월 동안은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받는다. 영우는 올 추석을 병원에서 쇤다. 재활치료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하는 영우 엄마는 핏기 없는 까만 얼굴을 하고도 아들만 보면 미소 짓는다. “이제껏 신발을 사 놓고도 한번도 제대로 못 신겨 봤지요. 올 추석에는 예쁜 운동화 한 켤레 사 주고 싶어요.”

2006년 9월 28일 조선일보 기사중
(기사바로가기 -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609/2006092805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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