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려도 깨지 않고 깊이 잠든 정은재(1) 아기. 은재 부모는 그 무엇도 딸의 안식을 깨트리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은재는 2017년 4월 24일 경남 사천의 작은 딸기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일곱 살과 세 살인 아들만 둘이었던 아빠(37)와 엄마(36)에게 너무나 귀한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은재는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구토가 잦더니 급기야 혈변을 누었습니다. 놀란 부모는 6월 28일 새벽 3시경 지역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서는 장중첩증을 의심했고, 초음파를 보면서 항문을 통해 공기를 넣는 등의 시술을 했습니다. 경과를 지켜보던 오후 2시쯤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수술을 결정했고, 혈류장애로 괴사한 소장을 겨우 26cm가 남을 정도로 잘라냈습니다.
딸의 목숨을 구하고 싶었던 부모는 7월 3일 딸을 서울아산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신생아를 잘 치료한다는 정보를 듣고서였습니다. 은재는 장루 복원술과 협착성형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일반 병동으로 옮긴 뒤에는 고단위 영양제인 T PN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은재가 떠안은 단장(짧은 창자)증후군은 쉽게 회복되는 병이 아닙니다. 우선 영양공급이 중요합니다. 입으로 뭔가를 먹으면 바로 설사로 나오기 때문에 특수분유를 콧줄을 통해 공급하고, 정맥주사로 TPN을 넣어야 합니다. 서울이 아니면 TPN을 맞기 어려워 집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은재 아빠는 퇴원에 대비해 서울아산병원 부근에 원룸을 하나 구했습니다. 한동안 은재는 서울에서 아빠가, 두 아들은 사천에서 엄마가 돌보는 이산가족으로 지내야 합니다.
간병하면서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 은재 아빠는 “딸을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꼭 나을 것이라는 기적을 믿고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5년 전 귀농한 그는 딸기를 재배하며 생긴 부채가 많아서 병원비 걱정이 컸습니다.
소아병동에서 같은 처지의 보호자들로부터 “사회복지팀과 상담해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설마 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같은 큰 병원에 의료비 지원제도가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제가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사회복지팀에서 얼마나 배려해 주시던지…. 깜깜한 터널에 갇힌 느낌이었는데 서울아산병원의 따뜻함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며 고마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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